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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국과 지옥의 이혼 - C.S. 루이스
    PMP(Project for Mentoring Project)/Book Review(PMP) 2019. 3. 26. 22:29

     

    군대에서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단테의 ‘신곡’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는 교회를 다닐 때는 아니라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얘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삽화와 지옥&천국의 여정은, 지루한 문체에도 책을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해줬다.

    오늘 비슷한 느낌의 책을 읽게 됐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소설이다. 문학책은 거의 읽지를 않아서 어떻게 읽을지, 서평은 또 어떻게 쓸지 감이 안온다. 이 책을 빌려준 친구의 말로 “분석하지 말고 그냥 느껴”달라고 한다. 그래서 최대한 느껴보려 노력했고, 느낀 바를 다시 정리해서 글을 적어보려 한다.

    개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곳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 사는 마을과 같다. 사실은 그 마을은 지옥이고 버스는 사람들을 천국 또는 지옥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 주는 버스이다. 같이 버스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 그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관찰하는 이야기다.

    지옥에서 버스만 타면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발상이 신선했다. 아, 그 전에 밝혀둘 것은, 이 내용은 성경을 기반으로 썼지만 다분히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판타지라는 것이다.

    “이 글이 판타지라는 사실을 명심해 달라는 것이다… 심지어 사후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추측하거나 어림짐작해 본 결과라고도 할 수 없는, 순전한 상상의 산물이다” (머리말에서)

    책에서는 이 세상이 ‘천국’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 왔지만 그 나라의 법칙을 받아들이지 못해 다시 지옥으로 불리는 곳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지옥도, 천국도, 우리가 살았던 이승도 다 누군가 꾸민 음모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그저 자신이 아는 가치와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 자기의 영광을 위해 목적을 수단으로, 수단을 목적으로 바꾸는 사람 등의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 것’에만 사로잡혀 욕심을 내려 놓아야만 하나님과 그 외의 것들을 모두 가질 수 있다는 이 세계의 법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엄마도 있다.

    “엄마와 아들을 갈라놓는 하나님 같은 건 믿지 않는다구요. 내가 믿는 건 사랑의 하나님이에요. 나와 내 아들을 떼 놓을 권리를 가진 존재는 하나님도 없어요. 하나님이라고 해도 안 돼요.”(p. 126)

    물론 새로운 세상의 규칙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을 통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는 못한다. 사실 모두가 그렇다. 작가는 천국을 가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려고 책을 쓴 것 같지는 않다. ‘오직 믿음으로’라던가 하는 일반론을 배우지 못한다. 우리는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각자가 가진 천국과 지옥의 이미지를 보게 된다. 하지만 진리는 하나다. 결국에는 우리에게 절대적 진리에 대한 의문만을 남긴채, 각자가 생각하는 진리를 생각해보게 하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해석해본다.

     

    몸살이 나서 누워있을 때 읽으려고 이 책을 들었다. 책이 얇아서 가볍게 읽기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볍게 읽히지만은 않는 책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책을 한 번 더 읽었다. 내용은 더 자세히 알게 되었지만 의문도 또렷하게 남는다. 이 책은 그런 의도로 쓰여지지 않았을까. 독자의 마음에 진리에 대한 궁금증의 씨앗을 심어 놓는 것.

    인상깊었던 대목을 인용하고 글을 마무리 하겠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예전에는 날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이로군.”

    “아주 빈곤한 방식으로 사랑했을 뿐이지요.”

    부인이 대답했다.

    “그래서 용서해 달라고 말했잖아요. 진정한 사랑은 아주 조금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저 아래 세상에서 ‘사랑’이라고 부르던 건, 진정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사랑받고 싶어하는 갈망이었지요. 저는 주로 저 자신을 위해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지금은!”

    비극배우가 닳고닳은 절망의 몸짓을 취하며 외쳤다.

    “지금은 내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건가?”

    “물론이죠!”

    부인이 말했다. 그 미소를 보니, 두 유령이 어떻게 기쁨으로 소리치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p.152)

Slow but steady wins the race